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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느님 / 안성준 안토니오
레지나 2018.04.30 197

2018년 4월에

포도나무 선교 찬미단, 안성준 안토니오님께서 평화방송 특집 <나의 하느님 4회>에 출연하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되도록 말씀하신 대로 받아적으려고 애썼습니다. 동영상을 링크하고 싶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안성준 님 편은 다시보기에 올라오지 않네요.)

(앞부분은 못 들었습니다.)

........... 앨범 00 일도 했었어요. 그러던 중에 아이엠에프가 터졌어요. 그 시점에 제가 운전을 하다가 작은 사고를 하나 내면서 갑자기 굉장히 힘들어졌어요. 일은 없어지고 너무 어려운 상황이 된 거지요.

당시 함께 음악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제게 복음성가를 같이 하자는 거여요. 그 친구에게 듀엣베베라는 선교단 이야기를 처음 들었어요. 듀엣베베는 복음성가 1세대 가수이더라구요. 도레미 레코드사에서 앨범을 냈는데, 가톨릭 안에서 전국적으로 200만장이 나갔다고 하더라구요. 깜짝 놀랐지요. ‘이런 틈새시장이 있었구나. 이걸 몰랐구나. 이걸 해야 되겠다.’하고 굳게 마음을 먹었어요.

듀엣베베에 면접 보러 갔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베베의 베드로 형제를 만나 뵙게 되었는데, 근데 의외로 쉽게 저를 마음에 들어하시는 거여요. “같이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해보자.”하셨어요. 그런데 조건이 딱 하나 있더라구요. 세례를 받아야 된대요.... 제가 얼마나 무지했냐면, 그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세례가 복음성가 가수가 되려면 꼭 따야 하는 자격증인가보다 하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아무 것도 몰랐어요.

그렇게, 돈 벌 욕심에, 하느님을 아예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앨범을 내고 가톨릭 안으로 오게 되었어요. 교리를 6개월 동안 받는데, 수녀님이 한 번인가 두 번인가 빠지면 ‘자격증’을 안 준다는 거여요. 저는 한 번도 안 빠지고 교리를 받았던 것 같아요. 근데 교리 받는 내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다 흘려버리고, 오로지 빨리 6개월 지나 자격증 따고 앨범 내서 돈 벌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듀엣베베의 베드로 형님께서 제 대부님이 되셨고, 그렇게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고 앨범 녹음을 하기 시작했고, 정말 힘들게 앨범이 나왔어요. 그때 당시 평화방송 텔레비전에도 몇 번 나왔어요. 그때는 하느님을 알기 전이라 머리도 길고 귀걸이고 한 채로 방송에 나갔던 기억이 나요. 그러면서 엄청나게 기대를 했지요. ‘떼돈을 벌겠구나.’하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주님께서 물질로부터 철저하게 차단하셨던 것 같아요. 3개월 정도 하니까 떼돈은커녕 굶어죽기 딱 좋겠더라구요. 저는 정말 굉장히 열심히 했거든요. 올인을 했거든요. ‘얼마나 고생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절망이 오더라구요. 너무 허무했고, 저를 속여서 같이 하자고 했던 친구도 꼴 보기 싫었고, 대부님이고 뭐고, 다 속은 것 같았어요. 절망감이 너무 크니까 우울증도 앓았어요. 절망스러워서, ‘이거 아니구나.’ 싶어 연락을 끊어버리고 다시 대중음악 쪽으로 돌아섰어요. 대중음악을 하면서 세상의 대죄를 밥 먹듯이 지으면서 살게 되었지요. 그렇게 떠나가서 한 2년 정도를 지내면서 세례를 받았고 복음성가 앨범을 냈다는 사실도 까마득히 잊어버렸어요.

그렇게 죄 중에 살던 어느 날이었어요. 제가 그때는 혼자 살았어요. 저녁에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통증이 찾아왔어요. 며칠 전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더라구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아팠고, 굳이 설명하자면 쇠꼬챙이로 가슴을 콱 찍어서 돌려 파내는 듯했어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고 호흡을 할 수 없었어요. 그냥 앞으로 푹 쓰러졌는데, 순간적으로 심장마비가 왔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죽음이 직감하게 되었어요. ‘지금 죽는 거구나.’ 너무너무 두려웠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숨을 못 쉬고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얼마나 바닥을 굴러다녔는지 몰라요. 근처에 동생이 살았고 여차하면 119를 누르려고 전화기까지 가려고 해도 갈수가 없었어요.

제가 항상 친구들한테 허세를 부리던 말이 있어요. “나는 굵고 짧게, 대곡 하나 멋있는 거 쓰고 짧게 살다 그냥 죽을 거다.” 그것이 얼마나 허세였는지... 막상 죽음을 맞닥뜨리니까 너무너무 두려웠어요. 그리고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가 생각났어요. 엄마 얼굴 한 번만 보고, 죽더라도 엄마 얼굴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고..... 숨을 못 쉬는 상황에서도 눈물이 철철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6개월간 교리 받으면서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간 줄만 알았었는데, 나도 모르게 하느님 생각이 났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느님 저 좀 살려주세요.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아니면 조금만 연장시켜주세요. 어머니랑 작별 인사할 시간을 주세요.”하고 누워서 얼마나 울부짖었는지 몰라요. 잘못했다고..... 후에 생각해보니, 그게 회개의 기도였더라구요.

그렇게 울부짖으니까 숨이 조금 쉬어지기 시작했고, 통증도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어요. 제가 엉금엉금 기어서 소파에 팔을 이렇게 걸치고 앉았어요. 병원에 가야되겠다는 생각도 안 들고, 어디 전화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그 순간에 아버지 생각이 났어요. 이야기가 좀 긴데요. 제가 중 2때 아버지한테 너무 큰 상처를 받았거든요. 아버지는 무능한 분이셨어요. 가정을 일체 돌보지 않았고 중증 알콜 중독자였어요. 엄마가 행상해서 저희 오남매를 다 키우셨어요. 제가 중2 때로 기억하는데, 당시 수업료를 1년 정도 못 냈던 것 같아요. 선생님한테 불려갔고, 선생님이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어요. 그날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술에 많이 취해 계셨어요. 제가 “아버지 수업료 주세요. 언제까지 내지 않으면 학교 나오지 말랍니다.” 했더니 아버지가 제게 심한 욕설을 하시면서 “쌀도 없는 형편에 학교를 다녀야하겠냐. 학교를 그만 둬.” 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너무너무 화가 나서 처음으로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대들었어요. 막 대들었어요. 아버지가 제게 수업료 한 번이라도 주면서 그런 소리 하시냐고. 그 순간 아버지가 앞에 있는 걸 저한테 확 던지셨는데, 유리로 된 무거운 재떨이였어요. 그게 제 얼굴에 딱 맞았는데, 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여요. 피가 주르륵 흐르는 걸 손으로 막고, 집을 뛰쳐나와서 나중에 봤더니, 앞니, 윗니 세 개가 뒤로 다 밀리고, 입술이 다 찢어져서 혀가 입술 밖으로 나오더라구요. 얼굴이 퉁퉁 부었어요.

그때 저는 너무 큰 상처를 받았고 너무 절망했어요. ‘그래, 이런 집구석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냐. 어디 닥치는 대로 한 번 살아보자.’했어요. 저는 중2 때부터 술과 담배를 했고, 제 꿈은 오직 아버지로부터의 독립이었어요. 집밖으로 돌면서, 친구 집을 전전하면서 열등의식과 피해의식, 부모님에 대한 원망.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한... 여러 가지 것들.... 그런 상처를 안고 절망하면서 힘들게 힘들게 살았어요.

저는 나름대로 엶심히 살았고, 음악 쪽에서 인정을 받았고, 돈도 많이 벌게 된 상황이었는데, 심장 발작이 있던 그 순간에 아버지 생각이 나더라구요. 평생 증오하던 아버지 생각이 나면서 아버지가 그 순간에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도 피해자라는 사실, 할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 여러 가지 것들이 생각났어요.

하느님께서 진심으로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는 은총을 주셨어요. “아버지, 죄송해요. 저를 용서해주세요.”하면서 오열이 나는데, 주체할 수 없었어요. 그때 제 삶을 처음으로 뒤돌아본 것 같아요. 나중에 보니까 눈물과 콧물과 침으로 소파가 온통 젖었더라구요.

그렇게 오열하는 순간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임종하는 순간에 겪는 환상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는 그런 체험이 엄청 두려웠어요. 제 두 발을 한꺼번에 타오르는 불 속에 집어 넣은 것 같았어요. 두 발이 너무너무 뜨거워서 어떻게 하질 못하겠는 거여요. ‘어! 이거 왜 이래?’ 하는데 온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이 떨리기 시작했어요. 그 뜨거운 기운이 발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허벅지로 허리로 가슴으로 머리까지 올라왔는데, 그 기운이 너무너무 강렬해서 제가 다시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뜨거운 기운이 온 몸을 훑고 머리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주 정확하게 느껴졌어요.

그 순간에 듀엣베베의 베드로 형제님이 선물해주신 성서가 책꽂이에 꽂혀있는 게 보이는 거여요. 손을 덜덜덜 떨면서 성서를 난생 처음 펼쳐봤어요. 토비트 7장 17절 말씀을 그때 주셨어요. “얘야 용기를 내어라. 하늘의 주님께서 너의 슬픔을 거두어주시고 기쁨을 내려주실 것이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라는 구절이 제 눈에 크게 들어오면서 또다시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거여요. 그순간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주님의 은총으로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 저의 삶은 180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하루에 두세 갑씩 담배를 물고 살았고, 술, 대마초, 코카인이라는 마약까지 했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밑바닥의 삶을 살고 있었어요. 하느님께서는 그런 모든 중독을 하루아침에 다 끊게 해주셨어요.

며칠 후에 저는 아버지를 찾아갔어요. 제가 당시에 돈을 잘 버니까 아버지가 가끔 전화를 하셨어요. 돈 좀 부치라고. 그러면 제가 “당신이 어떻게 뻔뻔스럽게 나한테 전화를 해서 돈을 부치라고 할 수 있냐고..” 따졌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체험으로 진심으로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아버지가 대성통곡을 하시더라고요. 당신도 그 사건 이후로 하루도 편히 못 주무셨노라고. 그렇게 아버지와 뜨거운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제가 그때 당시 살던 집은 작업실을 겸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오거나 손님들이 오면 그 건물 1층에 있는 중화요리집에서 음식을 시켰어요. 거기서 항상 배달 오는 친구가 있었는데,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세상의 잣대로 보면 조금 부족해 보였어요. 배달을 와서 음식만 주고 가면 되는데, 꼭 들어와서 기타를 만지거나 했어요. 그럴 때마다 제가 뒤통수를 때리면서 “야, 안 가”라고 하고는 했어요. 그렇게 제가 무시하던 사람이 있었는데요. 제가 하느님을 만나고 나서 길을 걷다가 좁은 골목에서 그 친구랑 마주쳤어요. 철가방을 들고 앞으로 오는데, 너무너무 그 친구가 아름답게 보이는 거여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진심으로 90도로 인사를 했어요. “안녕하세요?”하구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벽쪽으로 붙어서 슬금슬금 도망가더라구요. 또 무슨 해코지를 하려고 그러나 하고요. 그 정도로 사람들이 이뻐 보였고, 자연, 세상이 하루 아침에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싶어요. 바람. 구름. 별. 꽃... 작은 꽃들 하나까지 너무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어요.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하신 분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느끼면서.... 곡을 안 만들 수가 없더라구요. 그때 당시 만든 곡이 포도나무 1집의 타이틀곡인 ‘위대하신 주님’이라는 곡이에요.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보면, 주님의 위대하심을. 떠다니는 하얀 구름을 보면 주님의 위대하심을 느낄 수 있어~~.......”

정말 그때는 절박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살려만 주시면~하고 제가 감히 하느님한테 거래 아닌 거래를 한 거지요. “살려만 주신다면 저에게 주신 음악적인 재능을. (저에게 미술하고 음악에 많은 재능을 주셨는데) 하느님을 찬양하는 데만 쓰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성가 백 곡을 만들어서 봉헌하겠습니다.”하고요. 결과적으로 주님이 저를 살려주셨어요.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래더라구요. 제가 그때 심근경색이었다고요. 죽지 않은 게 이상하다고 했어요. 저는 성령 체험이었다고 지금도 확신해요. 뜨거운 성령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제 병을 고쳐주시고, 제 마음 속 상처까지 다 만져주셨다고 확신합니다.

제 형제들에게 하느님을 만나나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너무너무 기뻐하는 거예요. 저만 빼고 형제들 모두가 개신교 신자였어요. 어머니가 믿음이 있어서 그 영향으로 형제들이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고, 저는 중2 때부터 완전히 비뚤어져서 방황하면서 살았지요. 제 동생이 제 이야기를 듣고 울더라구요. “나는 형이 객사할 줄 알았어요.”라고 했어요. 동생이 형을 위해서 우리 형제들이 얼마나 기도했는지 아냐고 하면서 자기네 교회로 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교회에도 몇 번 갔어요. ‘아, 그래. 찬양을 하는 목사가 한 번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어서 제 동생한테 물어봤지요. 찬양목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그랬더니, “오빠 잘 생각했어. 신학교에서 이런이런 과정을 밟으면 돼.”라고 했어요. 당시 저의 삼촌이 굉장히 큰 교회의 목사님이셨고, 신학교를 나오면 길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각오를 하고 있던 차에 여동생이 저에게 성경책을 하나 선물해주는 거여요. 개신교 셩경책이었는데, 예쁜 성경책이에요. 그 성경책을 선물 받고, 제가 성령 불체험 할 때 받았던 그 말씀을 한 번 보려고 이틀을 찾았던 것 같아요. 아무리 찾아도 “얘야. 용기를 내어라...”라는 구절이 없어요. 나중에 다시 성서를 찾아보고, ‘토비트서’라는 걸 알았고, 개신교에는 토비트서가 없다는 것도 알았어요. 그 순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하느님께서 가톨릭 안에서 찬양하기를 원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제 동생에게 이야기했지요. 저 혼자만 가톨릭으로 다시 와서 찬양을 하게 되었습니다.

포도나무 선교찬미단을 결성하게 되었는데요. 기존의 활동하던 팀에 제가 합류한 거예요. 기타 치는 사람이 없었고, 곡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제가 들어가게 되면서 기타, 건반, 베이스 기타, 드럼 파트가 다 된 거지요. 그렇게 해서 2004년 6월에 첫 행사를 하고 같이 활동을 했습니다.

초창기 때에는 정말 힘들였죠. 일이 없었어요. 앨범도 없었고, 아는 신부님도 없었고, 비빌 언덕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러다 남한산성 신부님을 알게 되었고, 신부님이 우리 음악성을 인정해주셔서 길을 열어주셨죠. 앨범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저희 명함도 생기고 조금씩 조금씩 찬양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가난하지만 그때에 비하면 밥은 안 굶고요. 지금은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제가 아이엠에프 전에 굉장히 돈을 많이 벌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앨범 프로듀서로 제가 인정을 받아서 잘 나가던 때가 있었어요. 제 지갑이 접히지 않을 정도로 항상 십만원 권을 꽉 채우고 다녔어요. 어렸을 때 가난했던 상처 때문에 죽기 전에 사람들이 해보는 건 다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한 같은 게 제안에 있었고 닥치는 대로 다 해봤던 것 같아요. 남방 하나에 100만원이 넘는 것도 입고 다녔어요. 그것이 내 안의 상처인 줄도 모르고요,

세상에서 음악하는 친구들을 보면, 돈도 잘 벌고 살지만 저는 부럽지 않아요. 제 행복지수는 그 누구한테 안 뒤질 거예요. 비록 가난하지만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제 아내가 저보다 많이 연상이에요. 저는 부모님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라서 그런지 따뜻하고 포근한 여자를 만나고 싶었어요. 제가 포도나무 선교단에 들어갔는데, 아내가 저를 그렇게 잘 챙겨주는 거예요. 사소한 것부터 잘 챙겨주더라구요. 그때는 제가 누나 누나 그랬지요. 같이 연습을 하는데, 하루는 아내가 피아노를 치는 손이 정말 예뻐보이는 거에요. 여자 손으로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사귀기 시작했고, 빠른 시일 내에 결혼하게 되었죠.

결혼 후에도 끊임 없이 시련이 왔어요. 결혼 전에도 아내한테 굉장히 큰 자궁 근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결혼 후에 더 이상 놔두면 위험하다는 소리를 듣고 수술하러 병원에 갔어요. 의사선생님이 도저히 근종만 제거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크기가 아기 머리만하다고 해서, 어쩔수없이 자궁까지 다 드러내게 되었어요.

그 이후에 아내의 면역력이 계속 떨어져서, 대상포진이 오더라고요. 그때는 그게 면역력이 약해져서 오는 병인지 몰랐어요. 급기야 포도막염이라는 게 오더라구요. 의사선생님이 “이건 몸에서 보내는 마지막 경고다. 관리를 못하면 죽는다.”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때부터 아파트 생활을 접고, 땅을 찾기 찾기 시작했고, 제가 유기농 농사를 짓게 되었어요. 일체 화학적인 거 다 쓰지 않고 퇴비도 만들어서 썼어요. 직접 지은 농산물을 먹으면서 생활하기 시작했지요.

나중에 아내에게 녹내장이 왔어요. 그게 갑자기 오더라구요. 좀 서서히, 전조증상이 있었으면 그렇게 말기까지 안 갔을 텐데, 녹내장 말기 판정을 받았어요. 수술을 했는데, 현재는 시신경이 양쪽 90%가 다 죽어서 10% 정도만 남았어요. 요렇게 바늘구멍 같은 데로 보게 되는 거지요. 여기서 점점 나빠지면 시신경이 점점 죽으면서 실명으로 간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현재 상황은 앞을 보면 바닥이 안 보이니까 걸려 넘어지고, 아래를 보면 앞이 안 보이니까 자꾸 부딪치고 그래요.

지금은 받아들였지요. 처음에 저도 주님을 원망했어요. “주님, 제가 좀 저를 장 챙겨주는. 좀 따뜻한 사람 배필로 달라고 그랬는데, 어떻게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다 해야 됩니까.”하고요. 모든 살림살이, 음식도... 제가 김치도 다 담가요.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에게 세 번 즙을 갈아줘요. 위가 안 좋으니까 양배추를 삶아서 갈아주고, 삼십 분 있다가 제가 농사지은 천년초를 다듬어서 갈아주고, 또 삼십 분 있다가 눈에 좋은 아로니아, 블루베리, 키위, 바나나 같은 과일을 갈아줍니다. 몇 년째 배일 해오는 일입니다.

어느 날은 ‘아!’ 힘든 거예요. 지치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제가 “하느님,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그랬더니, 가슴속으로 한 마디가 들렸어요. 말씀이 울리더라구요. “네가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고, 내게 사랑을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 말씀이 아주 강렬하게 들렸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이제 다 받아들였어요. 그래 기왕 내가 할 거기쁘게 하자. 투덜거려도 해야 되니까. 기왕 할 거 기쁘게 하자. 그때부터 그런 일들이 힘들지가 않더라구요.

‘나의 하느님은 나의 전부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느님이 안 계셨으면, 저는 벌써 죽었을 거예요. 너무 죄 중에서 살았어요. 정말 감사하지요. 어떻게 저를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뽑으시고, 달구시고, 이렇게 찬양하게 하시는지. 하느님 안에서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게 쓰임 받는지 모릅니다. 돈은 많이 못 벌지만. 신부님들이 항상 맛있는 거 사주시고, 부족한 우리 입술을 통해서 신자들이 눈물 흘리고, 은혜 받고, 하느님께 감사하게 되는 걸 볼 때마다 보람을 느껴요. 그렇게 저를 써주시는, 나의 전부이신 하느님이시지요. 다 감사하지요.

포도나무 선교찬미단으로 살아오면서 전성기라고 할 만한 때가 있었어요. 하루에 세 번씩 이쪽 본당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바쁜 시절이 있었지요. 이제는 저희들이 나이도 먹고, 잡사람 몸도 안 좋고. 지방 먼 데서 와달라고 하면 어쩔 때는 못 가는 상황이 되기도 해요.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제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만 쓰시려고 하는데, 내가 괜히 어떤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그걸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내가 거기 안 가면 후배들이 갈 텐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 ‘이제 내려놓아야 되겠다. 이제 정리를 해야 되겠다.’ 싶어요. 저는 후배들을 격려해주고 싶고, 능력은 없지만 도와주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저는 하느님께 100곡을 봉헌한다고 했기 때문에, 항상 곡을 쓰면 일체 곡비를 전혀 받지 않고 주어요. 이제 빠른 시일 내에 저 남쪽, 고흥이나 완도 같은 시골로 내려가서 허름한 농가주택에서 본당 성가대 일하면서 소박하게 살고 싶어요.

하지만 제게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가 작곡이니, 곡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좋은 곡, 은혜로운 곡 많이 만들어서 후배들에게 다 주고 싶어요. 그게 꿈이라면 꿈이에요.

https://youtu.be/ulUTx-Ap8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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