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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을 향하여
레지나 2016.11.27 594

본향을 향하여

 

  군에서 휴가를 나오는 루카와 수능을 앞두고 있는 유지니오를 위해 요양병원에서 잠시 나왔습니다. 살림은 남편이 도맡아 하는데도, 신경 써야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박근혜 게이트’가 터져서 뉴스 챙겨보느라 상당한 시간을 썼고, 불어버린 몸에 맞는 옷을 인터넷 주문하느라 낑낑댔습니다. 피로감이 더 심해져서 루카에게 제대로 된 반찬도 못해주었고, 긴장해있는 유지니오를 위해 밝은 모습 보여주지도 못했습니다.

  아프고 우울해지니 오래된 속상한 기억들까지 어제일처럼 되살아났습니다. 유지니오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3까지 엄마가 투병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으니, 마음의 짐이 오죽 무거웠으랴 싶었습니다. 건강이고 공부고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건 물론이고 ‘엄마’하면 생각나는 반찬 한 가지도 없을 터입니다.

 

  수능 전 토요일 저녁, 뉴스에서 수능을 앞둔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야 자식에게 공부할 동기가 되고 힘이 될 텐데, 나는 체력이 안 되니...’ 침샘암으로 5년여 동안 투병하다가 하느님 품에 안기신 최인호 작가님의 유고집 <눈물>을 잠깐 꺼내 보았는데, “작가로 죽고 싶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암 선고를 받고 ‘아들이 중학생만 되면 원이 없겠다.’하고 슬퍼하던 기억이 나서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빠! 이제 아들들이 제법 컸습니다. 감사해요. 저도 소원이 있어요. 작가 말고, 환자 말고, 엄마로 죽고 싶습니다. 웬만하면 병원에서 안 지내고 싶어요. 둘째가 군대 가서 휴가 나올 때에도 엄마로 있어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성체가 너무나 고픕니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성체가 고프다는 의미를 온전히 모르겠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자려고 누웠는데, 너무 고단해서인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빈자리로 인해 아이들이 얻은 손해를 하나씩 헤아려보자니,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주님의 억지에 말려들고 말았습니다.”(공동번역 예레 20:7)라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외침이 떠오르며 울음이 쏟아졌습니다.

  “아빠~! 제가 하느님만 믿고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시간 하느님 일을 하는데 우선 써버렸어요. 저는 하느님이 저 대신 아들들을 잘 챙겨주실 줄 알았습니다. 입 짧은 아이 제대로 못 먹이고, 좋은 습관도 제대로 못 들이고, 더 밝은 성격 만들어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하느님 믿고서 미련스레 지내서 그래요.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하느님께 안 맡기고 제가 더 애썼을 겁니다. 끄어어억! 아빠 때문에, 아빠 때문이에요. 지금이라도 00, 00 해주세요. 엉엉!)

 

  가슴속 깊은 곳에서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던 애끓는 서러움이 솟구쳤습니다.

  “제게 아빠께 의탁하는 믿음이 없었다면, 십 년 넘게 직장 구하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 남편을 참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빠 덕에 비정상적으로 기쁘게 지내지 않았다면 남편이 그리 태평하고 무책임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랬으면 저는 직장생활 안 해도 되었을 거고, 전이까지는 안 되었을 겁니다.”

  학교 다녀와 피곤해 쓰러져 누워 있으면서 거실에서 남편과 아이들이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리면 억울하고 슬펐습니다.

  “아빠, 아이들이 어렸잖아요. 남편의 태만 때문에 저는 무리했고, 아이들 가슴에는 멍이 들었습니다. 흐어엉. 저 너무 힘들었어요."

  투병 기간 내내 저 혼자 항암 정보를 찾아보고, 치료 계획을 세울 때, 혼자 이삿짐 정리하다가 진물이 나는 손톱에서 피가 터졌을 때, 온 몸이 공처럼 부풀어 앉지도 걷지도 못할 때, 요양병원을 혼자 결정하고 혼자 입원하러 들어갈 때, 저는 외로웠습니다.

  “아빠! 아빠를 덜 믿었더라면 몸이 이렇게 망가지기 전에 항암을 중단했을 겁니다. 그저 아빠 뜻 안에서 견디면 좋은 건 줄 알았습니다. 엉엉. 제가 아빠 꾐에 빠져서 그동안 의연한 척 울어야할 일을 두고 울지도 않았네요. 엉엉. 얼마나 많은 말도 못할 고통을 겪게 하셨습니까? 꺼어어어억."

  만나는 환우들에게 하느님 전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신앙적으로 도와주느라 힘을 쓰고 나면 어김없이 한바탕 크게 아팠던 기억도 났습니다.

  “아빠. 앞으로는 저 아니면 안 되는 일만 할 거예요. 우리 아이들만 위할 거예요. 유지니오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거 보세요. 엉엉. 아빠가 이제라도 제가 못 챙긴 것들 채워주세요. 영적 건강은 물론이고, 체격도 체력도, 성격도 성적도 다요.”

  천주교 박해로 다섯 아이와 함께 옥에 갇혀 있는 중에 젖먹이 막내가 죽자, 나머지 네 아이를 돌보려고 배교했다가 아이들이 동냥을 간 사이에 스스로 옥에 돌아와 순교하신 성녀 이성례 마리아님도 생각났습니다.

  “아빠! 그런 순교 보시고 기쁘셨습니까?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 네 아이들 하느님이 잘 챙겨주셨나요? 사제 수도자가 많이 났다구요? 그것 말구요. 잘 먹이고 아프지 않게 돌봐 주셨냐구요. 안 그러셨지요? 엉엉. 이성례 마리아 성인님! 어떻게 그러셨어요? 엉엉. 저좀 어떻게 이해시켜주세요. 저 마음이 너무 아파요.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하느님 덕에 행복하고 감사했던 기억들을 떠올려보려고 애써 보았지만 울음이 더욱 격해졌습니다.

  “그리구요. 아빠! 저 재능도 없고 지식도 없는데, 하느님 전해보겠다고 글 쓰는 거 힘에 겨웠어요. 바보처럼 제가 해야 되는 일인 줄로만 알고, 괜히 그랬어요. 끄윽끅! 너무 버거웠어요. 엉엉."

 

  다음날 울적한 마음으로 주일 미사에 갔습니다. 뜬금없이 봉헌 성가로 성가대 특송을 했습니다. 꼭 제 맘처럼 구슬픈 가락의 전주가 들렸습니다.

 

  이 세상 나그네 길을 지나는 순례자

  인생의 거친 들에서 하룻밤 머물 때

  환난의 궂은 비바람 모질게 불어도

  천국의 순례자 본향을 향하네.

 

  이 세상 지나는 동안에 괴로움이 심하나

  그 괴롬 인하여 천국 보이고

  기쁜 찬송, 늘 항상 못 부르나

  주 예수님 은혜로 이끄시네.

 

  생명 강 맑은 물가에 백화가 피고

  흰옷을 입은 천사 찬송가 부르실 때

  영광스런 면류관을 받아 쓰겠네.

 

  하느님의 위로인 것만 같아 눈물이 나려는 걸 참고 버텼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계속 삐쳐있을 거야. 감사 안 할래.’

 

  성찬식 때 신부님께서 성체를 들어 올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순간 놀라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떼어주신 빵이 바로 예수님의 찢어진 몸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찬의 전례 때에 갑작스레 드는 특별한 느낌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빵 냄새가 나서 미사가 빵을 나누는 잔치임을 묵상했고, 어느 날은 신부님께서 감실에서 성체를 꺼내실 때, 성체를 통해 우리를 만나시러 짠!하고 나타나실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시는 성부 하느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또 어떤 날은 제대 위에서 예수님이 빵을 직접 떼시고 제가 같은 식탁에 앉아 있는 듯했습니다. 수난을 앞둔 예수님께서 사랑이 가득한 눈길로 직접 저한테 빵을 떼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성체를 모시러 나갔는데, 예수님이 제대 아래로 내려오셔서 직접 나누어주시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성찬례는 최후의 만찬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라 '재현'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빵이 아니라 ‘수난으로 찢어진 당신의 몸’이었습니다.

  “아! 사랑을 위해 찢겨진 예수님의 몸! 그 사랑이 바로 ’완전‘이구나. 아빠! 그 완전함으로 위로받지 못할 고통이 없는 거군요. 이제 ’성체가 고프다.‘는 심정을 알겠습니다. 아프고 넘어질 때마다 성체를 고파하는 마음을 가져볼게요. 저도 성체가 고픕니다.”

 

  미사 때 홍보하러 나왔던 월간지 <참 소중한 당신>을 신청했더니, 과월호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딱 한 줄 말씀이 첫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열왕기 하, 20)

  하느님께 고마운 마음을 누르며 덤덤한 척 여쭈었습니다.

  “아빠. 그런데요? 그래서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해당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무렵 히즈키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 그러자 그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말씀드렸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히즈키야는 슬퍼 통곡하였다. 이사야가 가운데 뜰을 나가기 전에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영도자 히즈키야에게 말하여라. '너의 조상 다윗의 하느님인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이제 내가 너를 치유해 주겠다. 사흘 안에 너는 주님의 집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서 너와 이 도성을 구해 내고, 나 자신과 나의 종 다윗을 생각하여 이 도성을 보호해 주겠다.' "(열왕 하 20:1-6)

  십 년 전에 제가 하느님께 “저는 어떻게 되나요?” 하고 물으며 펼친 부분과 같았습니다. 쌩긋 웃음이 났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좋은 일만 해 온 것을 기억해 달라고 하다니, 히즈키야가 참 당당하군요. 저야 그렇게 못 살았지만 이거 제게 주시는 말씀으로 삼고 싶어요. 그래도 되나요? 십년 전부터 십오년이면 앞으로 오년 남았을 테고, 지금부터 새로 십오 년이면...... 히힛! 새로 십오 년이면 그럼 유지니오가 결혼할 때까지도 살아있겠는데요.”

 

  다음 장도 읽어보았습니다.  

  “이사야가 히즈키야에게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보라, 네 궁궐 안에 있는 모든 것과 네 조상들이 오늘날까지 쌓아온 것들이 바빌론으로 옮겨져, 하나도 남지 않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 ....너에게서 태어날 아들들 가운데 더러는 끌려가서 바빌론 왕궁의 내시가 될 것이다.' " 히즈키야가 이사야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전한 주님의 말씀은 지당하오."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평화와 안정이 지속되기만 한다면야.' 하고 생각하였다." 

  “아빠! 히즈키야가 왜 그랬을까요? 아들들이 우상을 섬기고 내시가 될 거라는 예언을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까요? 저는 아니에요. 제가 일찍 죽는 대신 아빠가 제 아들들 삐뚤어지지 않게, 하느님 마음에 들도록 돌봐주신다고만 하면, 그렇게 하겠어요.”

 

  다음 날은 ‘본향을 향하여’도 여러 번 듣고, 살살 운동도 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폐전이 된 쪽 어깨가 참을 수 없이 아팠습니다. 두어 달 전부터 어깨 여기저기가 아프기는 했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새벽 두 시까지 찜질하며 끙끙거리다가 진통제를 먹었는데 듣지 않았고, 한 알을 더 먹어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앞으로 더한 통증을 겪게 될 텐데, 진통제가 안 듣게 되면 어떻게 견디나 싶어서 무서웠습니다. 목에서부터 가슴까지 답답하게 숨이 차서 누울 수도 없었습니다. ‘히즈키야 이야기 읽고 내 맘대로 오버하니까 아빠가 말리시는 거야. 에그, 지당한 꾸지람이긴 하지. 미래를 자신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새벽에 겨우 한숨 자고, 심부전 치료차 다니는 2차병원에 갔습니다. 폐에 물이 차지는 않았는데, 횡경막이 올라와 있다고 했습니다. 지치고 속상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갖가지 가능성을 상상하며 심난해졌습니다.

  “아빠! 모레가 수능이라구요. 제가 좀 오버를 했기로서니, 참 날도 잘 잡으셨습니다. 아들 도시락 준비도 해야 하구요. 잘 때까지 기다렸다가 웃으며 격려도 해줘야 하구요. 잠깐이라도 같이 기도도 해주고 싶다구요. 수능 전 얼마간이라도 같이 있어주려고 병원서 나온 건데, 그 잠깐을 못 참고 아프게 하십니까? 아빠가 하필 오늘 아프라고 허락하신 게 분명해요.”

 

  통증과 호흡곤란 때문에 수험생을 위해 9일기도를 하고 있는 구역 모임에 잠깐 가서 인사만 하고 나왔습니다. ‘수능생 엄마가 기도모임에 한 번도 못 가고, 이게 뭐람.’

 

  다음날 2차 병원 종양내과에 갔습니다. 완화의료 센터가 있는 병원으로 옮겨서 치료할 때가 되었다 싶어, 몇 달 전에 3차 병원 진료 기록을 모두 옮겨놓았던 터였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늑막에 전이된 것들이 커져서 통증이 있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폐의 가지 하나가 막혔거나 늑막이 마비되어 올라붙어서 숨 쉬기 힘들게 하는 거라며, 더 센 항암제로 바꾸어야 하니 서둘러 씨티를 찍으라고 하셨습니다. 짐짓 괜찮은 척 쌩글 웃으면서, “여기서 찍을지 본병원에서 찍을지 생각해볼게요.”했습니다.

  ‘이제 지독한 항암 부작용에 시달리다가 죽는 일만 남았구나. 항암제 바꾸면 바로 종양이 줄어든다는 보장이 없는데, 이 통증을 어떻게 하지?’

  본병원에 진료를 신청하려니, 제일 빠른 게 한 달 후라고 했습니다.

  피곤하고 울적해서 말할 기운도 없었지만 아들에게 잘자라 인사하면서 환하게 웃어보였습니다.

 

  의사샘이 추천해주신 항암약들을 검색해보니, 심장 기능을 약하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심부전 때문에 조심해야하는데, 항암을 최대한 미룰까? 그럼 이대로 가는 건데, 주변 정리도 미루다 미루다 못했는데, 이렇게 아픈데 이제 미루면 안 되겠네. 통증만 조절할 수 있으면 빨리 죽더라도 버티는 게 낫겠지. 어느 병원을 가야 하지? 어떻게 할까?’

 

  수능 날 아침, 있는 힘을 다해 일찍 일어나 아들 도시락을 싸주고, 시험장까지 따라가 주었습니다. 차안에서 으쌰으쌰 응원도 해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잠깐 잔 후에 근처 성지에 미사참례을 했고, 돌아와 다시 잤습니다.

  “아빠, 저 아프고 알아봐야할 게 많아서 아들 위해 계속 기도 못합니다. 알아서 챙겨주세요. 꼭이요. 실수하지 않고 준비한 대로만 성적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가슴에 통증이 심해서 병원에 다시 전화했더니 마침 예약 취소된 자리가 있어서 일주일 후로 진료 예약이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응급실 가야 하나? 숨 못 쉬는 고통은 너무 무서워.’

 

  유지니오는 풀이 죽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영어 시험 문제가 어려워서 당황한 터에 뒤에 앉은 아이가 발로 계속 툭툭 차는 바람에 집중을 못했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욕심도 없고 노력도 안하고 태평하던 아이가 시험 끝나고 십 분을 울었다고 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채점을 해보니 모의고사에서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점수가 나왔습니다. 원하는 대학을 못 가게 생겼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위로해주었더니, 유지니오가 “엄마, 미안해.”하며 저를 안아주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동생이 안부 전화를 했습니다. 말할 힘도 없었지만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응, 계속 아프다. 유진은 시험 망쳤단다. 이제 하느님한테 안 기대고 죽을 준비나 할란다. 너무 고단하다.” 동생이 그럼 안 된다고 나무라기에, “아니야. 우물쭈물하다가 허둥지둥 떠날 수는 없다.”하고 전화를 툭 끊어버렸습니다.

 

  속이 상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지원 가능 대학 알아보고 고민하다가 다음날 등교하는 아들을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하향지원하더라도 여기,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겠다. 재수 무서워하지 말아라. 엄마가 도와줄 수 있어. 힘내라.”

 

  아들이랑 일주일쯤 더 지내고 싶었는데, 숨쉬기가 힘드니 당장 숲속 공기가 필요했습니다. 다시 요양병원에 입원하러 가는 길에 눈물이 와락 쏟아질 것 같았는데, 운전하는 남편이 보는 게 싫어서 꾸욱 참았습니다.

  시무룩하게 입을 닫고 있던 남편이 말했습니다.

  “유지니오에게 뭐라고 해주지?”

  “지금 제일 힘든 사람은 유지니오라고. 그 녀석이 시험 보고 울 애가 아니잖아. 그런 표정으로 집안 분위기 우울하게 끌어내리지 말고, 즐겁게 해줘.”

  “하느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불상사를 허락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아들 인생에 더 보탬이 되는 경험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시간이 없다구요. 십오 년도 바라지 않고, 오 년도 바라지 않고, 아들 재수하게 생겼으니 일 년만 시간을 주세요. 아무리 세상일이라고 이렇게 나몰라라 하시면 됩니까? 앞으로 아빠랑 말도 안 할 거예요.”

 

  패잔병이 되어 돌아왔지만 누군가와 마주하면 습관적으로 미소지어졌습니다. 반갑다는 인사에 웃으며 답하다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초임 때 제자인 민호가 전화를 했습니다.

   “선생님, 저 일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하하. 그래그래. 일 때문에 힘든 건 좋은 일이다.”

  4기 폐암 환자인 엘라가 카톡을 보냈습니다.

   “언니, 넘 힘들어서 운전하면서 혼자 실컷 울었어요.”

  마음이 아파서 “내가 지난 토요일 음청 울고 나서 다음날 듣게 된 노래야.”라면서 <본향을 향하여>를 보내주었습니다. “언니, 노래를 들으니 눈물만 나요.”

  옆 병실에 사는 개신교 신자인 숙이 언니가 반가워하며 물었습니다.

   “자기 돌아오면 또 무슨 하느님 이야기를 들을까 기대했는데.”

  풀이 죽어서 시큰둥하게 대꾸했습니다.

   “하느님 이야기는 무슨. 아무 일도 없었어요. 힘들기만 했네요.”

  저녁 식사 후에 언니랑 같이 걸으면서 그간 일들을 이야기 주었습니다.

   “하여간 하느님한테 맡겨놓으면 되는 일이 없다니까요.”

  둘이 하느님 흉을 보면서 푸하하하 웃었습니다.

   “그래. 자식 일은 포기가 안 되지. 그래도 하느님한테 맡겨놓는 게 나중에 보면 제일 낫지 않아?”

   “낫기는 뭐가 나아요? 우리가 직접 돌보는 게 제일이라니까요. 구멍 난 거 안 메워주셔요. 날이 없어서 수능 이틀 전에 그 난리가 나게 해요? ”

  막달레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언니,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셨잖아요. 지금 저한테 ”너 아직도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묻고 계시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사랑한다고 했어?”

  “아니요. '생각 좀 해보구요.' 했어요.”

  언니가 깔깔 웃으셔서, 저도 ‘우쒸~’하고 따라 웃었습니다.

 

  병원서 준 진통제를 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눈을 뜨니 여전히 가슴 속 넓은 부위가 날카롭게 저렸습니다. 오후가 되어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혹시나 했던 내가 잘못이지. 내일 하필 일요일이라, 응급실로 가야겠네. 독한 항암 안하고 이대로 버티다 그냥 죽으면 딱인데. 진통제랑 산소통만 구할 수만 있으면... 뾰족한 수가 없을까?’

  “아빠. 일 년도 욕심이라고 하실 양이면, 두 달 후 정기검진 때까지만이라도, 아니 며칠 후 진료 예약된 날까지라도 살살 버틸 수 있게 해주세요.”

 

  마음이 바빠져서, 끄적여 놓았던 글들을 교정 못한 채로라도 묶어놓아야겠다 싶었습니다. 우연히 한 곳을 펼쳐보았는데, 항암 후에 오심을 견디기 힘들어서 하느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어허. 하느님. 이러시기 없기.... 쫀쫀하게 굴지 마시기. ” 그랬더니 울렁거림이 멎었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참 시시껄렁하고 유치한 속마음도 다 써놓았다’ 생각했지만, 그 시절의 제가 부러웠습니다. ‘그래, 철부지 애기일 때가 좋았어. 큭. 맞아. 쫀쫀 대마왕 하느님!’ 돌이켜보면 하느님은 결코 쫀쫀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내가 지금 어쭙잖게 애어른처럼 굴면서 힘들다고 하고 있구나.’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 진짜진짜 이러시기 없기! 통증을 며칠만 없애주세요. 안 쫀쫀하실 줄 다 알거든요.”

 

  ‘쫀쫀 대마왕’이라는 말에 하느님이 억울하셨는지 진통제를 먹지 않고도 푹 자게 해주셨습니다.

 

  다음날은 컨디션이 많이 좋아져서 환우들과 주일 미사에 갔습니다. 전례력으로도 한 해를 마감하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이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심을 기리는 날입니다.

 

  복음에서 왕이신 예수님은 사람들의 갖은 기대를 저버리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지도자들과 군사들은 예수님께 “네가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라고 조롱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35ㄴ-43)

 

  강론 시간에 신부님께서 “여러분들 마음속 옥좌에 어떤 왕이 계십니까? 돈이나 권력이 있지는 않습니까?”하고 물으셨습니다. 순간 한 깨달음이 스쳐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내 투병의 마지막 즈음에는 ’십자가상 주님‘을 마음속 왕으로 모셔야하는구나.’

 

  정말 그렇습니다. 제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 바라보아야할 주님은 ‘사랑을 일러주시던 분’도 아니고, ‘위로해주시던 분’도 아니고, ‘산같이 든든한 애인 같은 분’도 아닙니다. 저를 도와주시기는커녕, 무능하게도 당신 고통도 벗어버리지 못하시는 '십자가에 매달린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제 죄 때문에 못 박혀 계시는데, 권능을 떨쳐 보이시라고 소리 지르는 저는 못난 죄인입니다. 자꾸 조르다 토라지는 저 때문에 주님은 더욱 외로우시겠지만, 제 고통을 함께 아파해주실 것입니다.

 

  제가 철부지일 때는 우도가 저와는 차원이 다른 죄인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도 이야기에서 극악무도한 죄인까지 구원하시는 주님을 배우면 족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될수록 우도가 저와 동떨어진 죄인이 아니라 바로 저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성인들처럼 사랑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지 못하고, 우도처럼 제 부족함과 죄로 못 박혀 있지만, 정말이지 다행히도 저는 주님께서 저의 왕이심을 인정할 줄 압니다. 제 마지막 날에, 우도의 마음이 되어 십자가상 주님을 바라보기만 해도, 주님께서는 왕다운 권위로 제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천국을 희망하는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왕이신 주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2016년 11월 23일, 통증에서 벗어나 생기를 되찾은 레지나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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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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