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로그인       사이트맵      오시는길
전체보기
맨 위로
홈 > 무지개공간 > 이야기 나눔터
대림 제3주간 토요일 / 김현 신부님
레지나 2017.12.23 298

대림 제3주간 토요일


루카 복음 1장 57-66절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즈카르야 그 이름은 “하느님께서 기억해 주셨다”이고, 엘리사벳은 “하느님께서 맹세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메시아에 관한 약속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기도는 응답을 받았고, 더불어 하느님께서 간절히 원했던 아들을 주시고 친히 이름을 지어주시고 사명을 주시며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큰 약속을 지니고 태어날 이 아기는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홀로 깨어 기다리다가 신랑이 다가온 것을 가장 먼저 알리는 사명’(마태 25,6 참조)을 받았습니다.

이런 엄청난 약속을 품은 즈카르야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말을 그칠 밖에요. 성전직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즈카르야는 하느님께서 개입하셨다는 표징이 된 침묵 속에서 아기의 탄생을 준비하였고, 엘리사벳도 다섯 달 동안이나 드러나지 않게 숨어 지내며 감사기도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침묵, 받은 은혜를 떠벌리지 않는 잔잔함. 이런 태도가 자연스레 몸에 밴 신자들은 보석과 같습니다.

자기자랑과 잠깐의 침묵도 견뎌내지 못하는 조급하고 몹시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그들은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그 표징의 의미는 이런 것이라 생각됩니다. “말씀이 커지실 때 말들은 줄어듭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세례자 요한도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더욱 작아져야 한다.” (요한 3,30)고 말했지요. 집안 내력인가 봅니다. 

침묵은 내적 생활의 문지기와 같습니다.(호세마리아 에스끄리바) 하루 중 언제 침묵과 만납니까? 설마 헤어졌나요?


김현 프란체스코  살레시오신부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