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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눈치 없으신 하느님>
레지나 2017.11.09 283

출판사 서평

 

 

어느 날 병마가 날벼락처럼 찾아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 오랜 시간 병마와 싸워야 한다면 어떤 마인드와 자세가 필요할까.

저자는 서른아홉, 당시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던 한창나이 때 암 환자가 되어 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인 두 아들을 둔 채 2006년 2월, 대수술을 받게 된다. 그로부터 12여 년 동안 저자는 재발과 암세포의 폐 전이 그리고 수시로 최악의 위급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글을 써왔다. 이 책 [눈치 없으신 하느님]은, 예고 없이 닥친 병마와 싸... 더보기

 

 

병마와 싸워온 12년, 그 은총의 통로

 

 

어느 날 병마가 날벼락처럼 찾아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 오랜 시간 병마와 싸워야 한다면 어떤 마인드와 자세가 필요할까.

저자는 서른아홉, 당시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던 한창나이 때 암 환자가 되어 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인 두 아들을 둔 채 2006년 2월, 대수술을 받게 된다. 그로부터 12여 년 동안 저자는 재발과 암세포의 폐 전이 그리고 수시로 최악의 위급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글을 써왔다. 이 책 [눈치 없으신 하느님]은, 예고 없이 닥친 병마와 싸우며 겪게 되는 고통을 기쁨과 감사와 사랑으로 다스려가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어둠 속에서 평화를 찾아가는, 그리하여 어둠을 빛으로 승화하는 지혜가 담긴 책이다. 또한 저자 특유의 재치와 유머와 아이처럼 천진스러운 신앙으로 풀어가는 감동 스토리들이다. 누구나 갑작스러운 병마와 죽음 앞에 던질 수 있는 번민과 의구심들을 유쾌해하고 치열하게 풀어가기도 한다.

물론 저자를 이처럼 예지롭게 지탱해온 매개체는 신앙이다. 투병의 고통 가운데 함께하신 하느님의 현존 체험,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표현한 영성의 자취소리로써, 투병 생활 동안 더욱 깊어진 하느님과의 만남, 더욱 환해진 감사와 행복을 담았다. 그래서 ‘고통 속에서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보다 더 거룩한 것은 없다(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페이지를 넘기는 만큼 감동, 읽은 만큼 은총

 

 

저자에게 글 쓰는 일은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알리는 소명이었다. 삶과 죽음을 묵상하고 의문을 던지며 하느님과 함께 그 해답을 얻어 이웃에게 전하기 위해 저자는 지금껏 온 힘을 다해왔다, 그 결정체로 [눈치 없으신 하느님]이 출간된 것이다. 이 책에서 인용된 성경 말씀은 놀랍게도 모두 하느님께서 찾게 해주셨다.

웃고 울며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감동과 은총이 출렁인다. 때로는 함께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다가도 감히 하느님께 눈치가 없다는 둥 ‘쫀쫀 대마왕’이라고 흉을 보고 따지는 저자를 만나면서 그만 통쾌하게 웃게 된다.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몸으로 12년을 이겨내 온 것도 기적이요, 그 12년 동안 방대한 분량의 글을 써왔다는 것도 기적이다. 오랜 세월 겪어온 고통을 ‘은총의 통로’라고 한 저자의 표현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글에서 나타난 저자의 영적 내공을 보면 마치 12년 동안 병마와 투쟁한 것이 아니라 영적 수련을 해온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비록 768쪽이라는 두툼한 분량이지만 내용이 감동인데다 글자가 다소 크고 시원하게 편집이 되어 있어서 금세 금세 책장이 넘어가는 독서감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 페이지를 넘기는 만큼 감동을 받고, 읽은 만큼 은총을 받으며, 영적으로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절망과 눈물의 골짜기에서 ‘배 째라 영성’으로

희망과 행복을 길어 올리는 말기암 환자의 남다른 삶과 신앙 이야기

 

 

희로애락의 멍에를 메고 삶과 죽음 사이를 널뛰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삶이다. 죽음은 늘 우리 주변에 있지만, 그가 나를 찾아왔을 때, 대부분 절망과 고통 그리고 눈물의 골짜기를 헤매기 나름이다. 그런데 그 절망과 눈물의 골짜기에서 ‘배 째라 영성’으로 희망과 행복을 길어 올리는 말기암 환자의 남다른 삶과 신앙 이야기를 듣는다. 저자는 자신과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죽어가는 것인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가. 이 책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신앙의 주요한 몇 가지 의문들에 대한 건강한 성찰을 하게 된다.(윤동출 프란치스코 신부)

 

 

“제가 받는 기도는 저를 기도로 업고 계시는 성자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성사이고 표징입니다. 저는 저를 구하신 예수님의 기도에 업혀 살고 저를 지으신 하느님의 자비에 업혀 삽니다."

저자의 마지막 고백이다. 영혼 고운 지인들의 기도에 업히고, 무엇보다 저자가 너무나 사랑하는 예수님의 기도에 업혀 영혼의 노래를 토해낸 저자는 나에게도 성사이다. 그녀는 영원히, 아니 이미 영원을 담아 행복한 사람이다.(조영대 프란치스코 신부)

 

 

주인공 하느님을 돋보이게

언니는 글을 쓰려는 영감을 우선 ‘방정맞은 생각’이라고 표현하곤 했습니다. 글 쓰는 일이 언니의 능력과 체력으로는 버겁고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언니는 습관처럼 ‘성령께서 시키시는 일’이라는 확인을 구한 후에야 글을 쓰곤 했습니다. 언니는 성령께서 글에 인용할 성경구절을 반드시 주신다면서, 그렇게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것이 언니의 수고에 대한 첫째가는 보상이라고 기뻐했습니다.

언니의 병이 깊어져서 살얼음판 위에 있는 듯 위태로워 보이는데, 언니는 ‘시키시는 일’이기에 기꺼이 책을 엮는 일에 얼마 남지 않았을 생명을 봉헌했습니다. 책 편집을 다 마칠 때쯤, 언니는 또 ‘기도에 업혀 살다’라는 글을 써볼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통증이 오락가락하여 심각한 상황이라 ‘괜히 떠오른 생각이려니’ 하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고 성경을 들고 기도했답니다. “처음 펼쳐서 글을 쓰라는 말이 나오면 써볼게요.”하고. 아마 누구라도 성경에 글을 쓰라는 말이 직접 언급된 구절이 있을 리가 없다고 안심?했을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김없이 응답을 얻었답니다. 처음 펼쳐진 집회서의 머리글에서 “…글을 쓰기로 결심하였습니다.…”라는 말씀을 발견한 것입니다. 언니는 ‘망했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겁 없이 또 글을 썼습니다. 언니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니가 아니라 하느님이시고 언니 생명의 주인도 하느님이시라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을 겁니다.

저는 언니의 소개로 몇 년 전부터 훌륭한 성령 운동가이신 아일린 조지 여사님의 강의에 다녔습니다. 지난 5월에 천국에 드신 여사님도 암으로 투병하시면서 40여 년간 ‘remission(회복)’ 상태로 많은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화상통화와 기도로 언니를 위로해주셨던 여사님의 전구로 언니가 치유되기를, 적어도 지금처럼 힘든 상태로라도 오래 제 곁에 있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언니를 통해 세상의 주인공이신 하느님을 돋보이게 하는 일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2017년 9월 23일 미국에서 동생, 유리아가 두 손 모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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