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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3주차] 사랑의 예복을 입도록 합시다 조회수 1362

 

10월 12일 연중 제28주일 | 마태 22, 1-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창세 3, 9-10).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아담은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이후 인간은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꾸미기 위해 옷을 입게 되었나 봅니다. 역설적으로 더 많은 치장으로 몸을 가리는 것은 그만큼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치부가 더 많은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들꽃 하나처럼 차려입지 못하였다면, 가장 좋은 옷은 어떤 옷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혼인 잔치에 초대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나는 장면이 오늘 복음에 있습니다. 잔치에 초대된 사람이 벗고 올 리는 없으니 아마도 잔치 분위기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때와 장소에 알맞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교부들은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사랑의 예복’을 입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죄악으로 얼룩진 인간은 사랑의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줍니다(1코린 13, 7 참조).

 

 저는 수단(길게 드리워진 성직자 복장)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합니다. 미사 드리러 갈 때는 물론이지만 강의를 하러 갈 때나 외부에 나갈 때도 잘 입고 다닙니다. 지하철에서는 사람들이 삐죽삐죽 쳐다보기도 하지만 저는 수단이 편합니다. 수단 입은 모습을 보고 롱드레스라는 어린이도 있고 “치마 속에 바지도 입었군요”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개 신자들은 “아이쿠, 신부님도 편한 복장을 하시니까 좋지요” 하시면서도, 사복보다는 수단을 입거나 로만 칼라를 하고 다니는 신부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선배 신부가 늘 수단을 입고 다니는 저를 보고는 “너는 옷으로 승부하냐? 왜 넌 수단만 입고 다니냐? 옷이 없니? 내 양복 하나 사 주랴?” 하시기에 얼른 “그래요, 한 벌 사 주시지요” 했지만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옷으로 승부한 적 없는데…. 신학생 시절, 독서직을 받고 처음 수단을 입게 되었을 때 하도 좋아서 더운 여름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검은 수단을 입고 다니던 생각이 납니다.

 

 옷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민소매를 입고 영성체 행렬에 들어섰다가 주례 신부께 창피를 당했다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탈리아에서 비키니를 입은 한 소녀에게 성체를 준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때 미사를 드린 곳은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조그만 공소였습니다. 해변에서 불과 수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 학생은 첫영성체를 한 지 얼마 안 된 어린이였습니다. 바닷가에서 놀다가 미사 시간에 막 뛰어온 것이었습니다. 이때는 영성체를 하게 해 줘도 되겠지요?

 

 맞는 옷을 알맞은 때에 알맞게 입어야 할 것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은 어색합니다. 아니, 잔칫상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온 이가 쫓겨나기까지 했습니다. 하느님의 잔칫상에 초대된 우리에게 어울리는 옷은 어떤 옷일까요?
 알몸을 드러내기가 부끄러운 우리는 사랑의 예복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줍니다.

 

 

 

 


 

 

 

 

손성호(요셉) _ 신부, 대구대교구 도동 본당 주임

월간「참 소중한 당신」 2014년 10월호 <송이꿀보다 단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