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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주차]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 조회수 1521

 

10월 5일 연중 제27주일 | 마태 21, 33-43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주인과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수확의 때가 되자 포도밭의 임자는 소출을 받아오라며,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내고 또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을 모두 죽였다. 그러자 주인은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당신 아들을 소작인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상속자인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며 그 아들을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마태 21, 34-41 참조).

 

 철새인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으며, 자기 알을 남의 둥지에 낳아 새끼를 맡깁니다. ‘탁란’(托卵, 다른 종의 둥지에 알을 낳아 그 종으로 하여금 새끼를 기르게 하는 것) 때가 되면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 근처를 기웃거리다가 재빨리 알을 둥지에 낳고, 대신 다른 새의 알을 한 개 물고 달아납니다. 다른 새의 알보다 2~3일 먼저 부화하는 뻐꾸기 새끼는 깨어나면 바로 다른 새의 알과 새끼들을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고 둥지를 독차지하며, 더 나아가 이 배은망덕한 뻐꾸기 새끼는 커서 자기를 키워 준 그 주인 새를 잡아먹기까지 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런 배은망덕한 행위에 대부분의 사람은 분노합니다. 철새인 뻐꾸기가 그렇게 하는 것이야 자연 생태계의 이치지만, 요즘에는 이성을 가진 사람의 경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부모의 희생과 사랑으로 미국 유학을 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아들이 부모의 재산이 탐나 귀국행 비행기 안에서 외국 영화를 보고 살해 방법을 연구하여 자신의 부모를 잔인하게 죽입니다. 대낮에 범인이 공공연히 범법 행위를 해도 도처에는 방관자들뿐입니다.
 ‘세월호’란 선박 안에서 그 많은 조국의 꽃 같은 미래가 오랫동안 고통 받으며 숨져 가는데도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기 위해 그들의 죽음을 묵과한 행위들이 세월과 함께 무뎌지고 그냥 지나갑니다. 자연 생태계에 속한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사실 자연 이치, 도리 그리고 윤리 도덕에 역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이나 집단이 다르지 않게 경쟁이나 하듯 극단적 이기주의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이사 5, 1-7)에 「포도밭 노래」가 나옵니다.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 만군의 주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집안이요 유다 사람들은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나무라네. 그분께서 공정을 바라셨는데 피 흘림이 웬 말이냐? 정의를 바라셨는데 울부짖음이 웬 말이냐?”

 

 배은망덕과 이기심, 불의와 악덕이 만연한 우리에게서 그분의 바람은 공정과 정의입니다. 정이 깨어지면 공론(公論)이 무너지고 개인적 이기심이 득세하여 피 흘림을 부릅니다. 정의가 깨어지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무너지고 불의가 만연하게 되어 울부짖는 세상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웃이 죽어도 나만 잘살면 상관없다? 이웃의 아들들이 바닷속에 잠긴 유람선 안에서, 군대에서 잔혹한 죽음을 당해도 내 아들만 아니면 상관없다? 이웃의 딸들이 성폭행을 당해도 내 딸만 아니면 상관없다? 나라가 망해도 나에게만 이익이 되는 위정자이면 상관없다?
 우리의 이런 마음가짐은 하느님 창조 질서의 파괴이며, 이웃이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지 모르는 무지하고 병든 이성의 마비 현상입니다. 또한 이런 현상은 우리 자신의 상실화이며 심각한 질병입니다. 그 치유는 이웃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며 그 이웃 또한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가림 없이 만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된 작금에서 짐승도 바른 인간도 아닌 우리들은 지금 어디쯤에 있는 것입니까? 국가의 미래인 젊은 세대는 인간다운 도리를 누구에게서 배우며, 또 그들이 그들의 후세에게 무엇을 가르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아직 얼마나 더 이웃을 미워해야 화해를 찾을 것입니까? 얼마나 더 상처를 주고받아야 사랑을 주겠습니까? 우리의 돌 같은 굳은 마음은 언제나 부드러운 마음이 되겠습니까?

 구약에서 포도밭은 이스라엘 집안이지만, 신약의 포도밭은 이 세상입니다. 구약의 포도나무는 유다인들이지만, 신약에서 포도나무는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우리들입니다. 그분께서는 정말 우리에게 해 주지 않으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망각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 엄청난 사랑을 우리의 무지로는 이해할 수 없어,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올바로 감사하고 사랑해야 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정신병자를 속어로 뻐꾸기라고 한다지요. 함께 사는 세상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 도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사욕만을 추구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이며, 이런 우리는 정말 정신병자가 아니겠습니까? 요즘은 벼가 누렇게 익는 수확의 계절이며 곧 주인이 소출을 받으러 오는 절기입니다. 그처럼 우리 인생의 수확의 때 또한 반드시 도래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 6-7). 아멘.

 

 

 

 


 

 

 

 

서광석(요셉) _ 신부, 전주 솔내 본당 주임
월간「참 소중한 당신」 2014년 10월호 <송이꿀보다 단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