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로그인       사이트맵      오시는길
전체보기
맨 위로
홈 > 무지개편지 > 이 주의 강론
이전달       다음달  
1주차 | 2주차 | 3주차 | 4주차 | 5주차
[2014년 10월 5주차] 연민을 통한 이웃 사랑 조회수 93613


10월 26일 연중 제30주일 | 마태 22, 34-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아이들은 전투적으로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당에서 아이들과 놀 때, 아이들이 가진 전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게임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간혹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그 부작용은 아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목숨을 거는 경우죠. 하루는 제가 스피드 퀴즈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게임은 긴장감이 맴돌았고,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때 두 아이가 게임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서로 울면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급기야 게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두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두 아이 중에 한 아이는 언니였고, 다른 아이는 여동생이었는데, 저는 둘 다 달래면서 이제 서로 용서해 줄 수 있는지를 각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언니가 너무 나쁜 말을 했기 때문에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했습니다.

 “만약 네가 실수로 나쁜 말을 했는데 용서 받지 못하면 어떨까?”

 아이는 그건 싫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는 조금 더 생각해 보다가 결국 언니의 용서를 받아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웃 안에서 나를 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첫째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둘째 계명도 이와 같다고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 39).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신 이웃 사랑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연민을 지닌 당신께서는 하느님이심에도 신성을 버리시고 인성을 취하셔서, 우리의 이웃이 되어 주십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내어놓음으로써, 이웃 사랑의 절정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지니신 연민을 지녔을까요? 그건 하느님만이 가진 특별한 마음일까요? 우리에게도 연민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지어 내실 때, 몸소 흙을 빚어 지어 내시고 당신의 입김을 불어넣으시며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지어 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느님이 가지신 그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어떤 날이었습니다. 저는 길을 가다가 지렁이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지렁이 한 마리는 비에 떠내려와 시멘트 위에 내던져져 있었습니다. 바닥이 딱딱해서 지렁이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피투성이가 되어 갔습니다. 저는 바쁘게 가고 있었기 때문에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서 지렁이를 잡아 흙으로 던져 주었습니다. 구해 주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지렁이를 구해 주고 길을 다시 가다가 제가 왜 지렁이를 구해 주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살고자 하는 작은 생명인 지렁이가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삶도 때로는 차가운 바닥 한가운데 내몰렸을 때가 있었음을 기억했습니다. 저는 지렁이에게 연민을 느낀 것입니다.


 사람은 지렁이에게조차 연민을 느낍니다. 하물며 사람에게는 어떠할까요? 우리 안에 하느님이 주신 마음이 우리에게 연민을 가지도록 합니다. 약하고 아픈 이들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가지도록 합니다. 우리는 분명 이웃 안에서 내 모습을 봅니다. 나아가 이웃 안에서 하느님을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마음이 닫혀 있으면, 우리가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주님의 마음인 연민을 느끼지 못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루카 복음서 15장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 11-32)에서 드러나는 큰아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루카 복음서 15장은 흔히 우리가 ‘탕자의 비유’라고 부르는 그 비유입니다. 제목에서처럼 이 비유의 주인공은 주로 탕자, 곧 작은아들입니다. 작은아들은 아직 죽지 않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떠납니다. 그리고 낯선 지역에서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때 탕자의 아버지는 작은아들에게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죽은 아들이 돌아옴에 기뻐하며 종들에게 살진 양을 잡아 잔치를 베풀라고 합니다.

 그런데 큰아들의 모습은 아버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처럼 달려가지도 않고, 오히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큰아들을 타이릅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화를 냅니다. 자신은 종처럼 아버지를 섬겼다며, 그런 자신에게는 왜 염소 한 마리 잡아 준 적 없느냐고 따집니다. 지금 큰아들의 마음에는 동생이 살아 돌아왔음을 기뻐할 마음의 공간이 없습니다. 큰아들은 연민을 느끼지 못합니다. 큰아들은 왜 연민을 느끼지 못할까요? 큰아들은 자신 스스로가 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도 아버지를 종처럼 섬겼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큰아들에게 누가 아버지를 종처럼 섬기라고 했을까요?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종이 되라고 했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루카 15, 31).


 하느님은 우리가 종처럼 당신을 섬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사랑받는 자녀로서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며, 하느님이 지니신 연민을 지님으로서 이웃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박힘찬(시몬) _ 신부, 부산교구 성 바오로 본당 보좌

월간「참 소중한 당신」 2014년 10월호 <송이꿀보다 단 말씀> 중에서